멋쟁이 바보(최광식) 수필집

운동회의 추억

멋쟁이 바보, 최광식 2024. 5. 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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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내 인생 나도 잘 몰라> 열여섯 번째 이야기

운동회의 추억

 

 

엄마! , 달리기에서 3등 했어.” 상으로 받은 공책 1권과 연필 1자루를 내밀었다.

, 그래? 애썼다. 내 새끼. 얼른 와 밥 먹어야지라며 자리를 내준다.

운동회에서 공책 1권과 연필 1자루를 상품으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4학년 가을 운동회에서다. 어머니께 자랑한 것도, 칭찬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달리기만 하면 4등이다. 3등도 5등도 아니다. 죽어라 달려도 3등을 추월할 수 없었다. 한 조에 8명씩 달렸으니 중간은 했다. 3등을 했던 해는 행운이었다. 그해에 면 대항 학교별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같은 조에서 1등을 하던 친구가 학교 대표 달리기 선수로 선발되어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이날만은 어머니께 특별 대접을 받았다.

운동회에서 있었던 일로 지금은 잊혀 가는 아름답고 가슴 시린 추억이 초등학교의 운동회다. 학교 운동회라기보다는 가족끼리 오붓한 소풍이고, 지역 사회의 한마당 축제라 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학교 뒷동산과 교사 처마 밑 그늘진 곳에 자리하여 먹던 점심은 맛 이상의 행복이었다.

 

학교에 가는 길에 코스모스가 화려하게 피기 시작할 무렵이면 마음이 설레며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운동회가 열리는 해는 먼저 준비를 하는 것이 매스게임에 입어야 하는 운동복이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매스게임에 필요한 소품을 준비하라 하신다. 야호! “올해는 운동회가 열리나 보다.”라고 누구나 할 것 없이 환호하며 반겼다.
농번기를 보내고 아직은 낮 더위가 남아있는 선선한 초가을 운동회 날 아침이다.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꽝꽝 울리는 학교 확성기의 행진곡을 들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학교로 달려갔다. 푸른 하늘에 걸쳐 놓은 만국기는 마음을 흔들어 놓고, 운동장에 선명하게 그어진 하얀 줄들이 운동회 기분을 느끼게 했다.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운동장 좋은 길목에 차려 놓은 각종 먹을거리와 장난감 장사꾼이 펼쳐놓은 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축제장에는 먹을거리 장터와 토산물, 기념품을 파는 장사꾼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운동회에 등장한 먹을거리는 다양하지 않았지만 어린 마음을 만족하게 해주는 데 충분했다. 이날만은 군것질이 제한적이나마 허용받은 날이다. 그런 운동장 주위를 두루 돌아다니며 먹을거리에 눈도장을 찍어 놓았다.

깃발이 춤을 춘다. 우리 머리 위에서 달리자 넓은 마당, 푸른 하늘 마시며. 우리 편 잘해라 저쪽 편도 잘해라. 우리는 다 같은 주천 남의 어린이응원가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운다. ‘삼삼 칠가락에 맞춰 부른 응원가 빅토리, 빅토리, 브이 아이 시 티 오 알 와이당시에는 아무런 의미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신나게 외쳤던 응원의 함성, 지금도 귓가에서 쟁쟁하게 들려온 듯하다.
흰 메리야스에 흰 줄이 양옆으로 댄 반바지 체육복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어 운동회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종목은 매년 거의 같았다. 시작을 알리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매스게임이다. 학년별로 한 달여 동안 준비를 했다. 힘들었지만 최고의 작품이 되곤 했다. 이어서 학년별 달리기가 있다. 상품이 있어서 긴장하게 된다. 편성된 조의 친구들을 보며, 오늘은 몇 등이나 할 수 있을까? 셈을 해 보지만 미리 기가 죽는다. 3등을 다짐해 보지만 오늘도 4등이다.

달리기가 끝나면 점심을 먹는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찾기 쉬운 곳에 자리를 잡고서 기다린다. “오늘은 몇 등 했어?” 상품을 내밀면 어유! 내 새끼 잘했어!”라며 반긴다. 운동회 날만은 아낌없이 음식을 준비해 자식들이 충분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오후에는 단체전으로 청백전이 학년별로 진행되었고, 점수는 종합 집계되었다. 한 예로 1학년 상징 경기는 큰 공 굴리기나 바구니 터뜨리기, 6학년 남자는 어깨에 멘 길쭉한 바구니에 모래주머니를 넣는 게임을, 여자는 바구니 터뜨리기 게임을 했다.
막대기와 같이 뻣뻣한 우리에게 얄궂은 동작들로 부끄럼과 세련됨을 맛보게 했던 포크댄스는 예쁘신 여선생님이 지도하셨다. 네 박자 춤곡에 맞추어 남녀가 팔짱 끼고, 손뼉 치고, 깡충깡충 짝을 바꿔가며 돌아가면서 춤을 추었던 기억이 새롭다.

종 치기는 운동장 가운데에 매단 종을 먼저 치고 제 위치로 돌아오는 게임이다. 먼저 종 치고 돌아오면서 상대에게 잡히면 패하게 되는 게임으로, 지혜와 긴장감, 속도감이 만점인 놀이었다.

돗자리를 깔아 놓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후 음식, 담배, 안마, 노래, 춤으로 기쁘게 해 드리는 경로 효친게임, 부모와 함께 손잡고 달리기했던 기억도 새롭다.

행진하면서 태극기를 만들어 내는 종목이 있었다. 키가 작은 나는 이리저리 무조건 따라 걷다 보면 마지막엔 태극기 형상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운동장에 벌떡 누워 들고 있던 작은 태극기를 하늘 높이 들어 흔들면서 끝이 난다.

  고학년의 조립 체조는 호된 기합과 연습으로 완성할 수 있는 위험한 종목이다. 2인조, 3인조 형태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꾸며졌는데한강 다리라는 꾸미기는 많은 친구가 참여했기 때문에 힘은 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잘못하게 되면 다치기 때문에 장난기 많은 우리는 기합을 많이 받았고, 협동심을 기르기에 알맞은 운동이었다.
운동회가 끝나는 무렵에는 마을 대항 경기가 치러지게 되었다. 학생과 부모님들이 함께하는 마을 대항 계주는 동네 크기가 달라 불공정한 게임이었지만 서로가 최선을 다했고, 덩달아 흥겨워서 신이 났다. 마을별 장년들의 힘자랑 경기가 40모래가마니를 들춰 메고 뛰는 것이다. 마을마다 내로라하는 장사들이 벌이는 경연장이 되었으며 열기는 대단했다.

운동회가 끝나기 직전은 기마전이 열린다. 가장 흥미진진한 게임으로 학년별, 청백전으로 이뤄졌고 분위기를 최고조로 달군 흥미 있는 게임이었다.
당시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운동회는 사라졌지만, 마음속 한쪽에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  - .   -  - 우리 청군(백군)  이겨라."라며 맘속으로 크게 외쳐보며 그때 못다 한 응원을 해 본다.

(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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