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바보(최광식) 수필집

모 내 기

멋쟁이 바보, 최광식 2024. 4. 1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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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내 인생 나도 잘 몰라> 열 번째 이야기

모 내 기

 

~, 줄이야, ! 줄 넘어간다. ~

~, 줄이야, ! 줄 넘어간다. ~줄잡이의 소리에 맞춰서 모내기하는 모습으로 정겹고 즐거운 노랫가락이다. 내가 겪었던 6, 70년대 모내기의 한 모습이다.

 

모를 심기 위해서는 못자리에 볍씨를 뿌리고, 일정 기간 모가 자라면 논에 옮겨 심게 되는 데 이를 모내기라 한다. 써레질이 끝난 논에 못줄의 꽃눈에 맞춰 모를 심었다. 모내기는 볍씨를 못자리에 뿌리는 일부터 시작된다. 모를 키워내는 논은 못자리 배미라 하여 집안마다 별도로 관리한다. 그해의 풍작을 좌우하는 것은 못자리 관리와 볍씨를 뿌리는 일부터 시작된다. 아주 중요한 일로 볍씨를 뿌리는 날은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날로 택일하여서 뿌렸다. 이유는 바람이 없는 날이 볍씨를 뿌릴 때 날리지 않고 모판에 골고루 뿌려지기 때문이다.

못자리의 모가 자란 상태를 보고 모내기 날을 잡는다. 모가 자라지 못하거나 웃자라게 되면 벼 수확에 많은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모내기 날이 잡히면 하루 전이나 당일 새벽부터 모를 찐다. 모를 찌는 방법은 손으로 모를 뜨는데, 뜬 모의 뿌리에 엉겨 붙은 흙을 물에 흔들어 씻어낸다. 모는 잘 쪄내야 쉽게 모내기를 할 수 있다. 잘못 쪄진 모는 일꾼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모내기가 끝날 때까지 투정은 계속된다. 쪄낸 모의 묶음을 모춤이라 하며, 모내기할 논에 지게를 이용하여 모춤을 골고루 뿌려 놓는다. 이 일은 주인이 직접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를 찌는 일부터 힘든 과정이다. 힘듦을 잊기 위해서 모 찌는 소리를 부르기도 한다. 노래의 리듬은 명쾌하고 빠르게 부르며, 한 사람이 선창하면 다른 사람은 가락을 이어받아 부른다.

에헤야 어기어라, 모 난 데가 사라진다. 앞의 산은 가까워지고, 뒷산은 멀어진다.” “에헤야 어기어라, 모 난 데가 사라진다. 먼데 사람 듣기 좋고, 가까운 사람 보기 좋다” “에헤야 어기어라, 모 난 데가 사라진다. 다 되었소, 다 되었소, 이 모판이 다 되었소.” “에헤야 어기어라, 모 난 데가 사라진다.”를 흥을 돋우며 불렀고,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모를 다 찐 후 휴식 겸 새참을 먹게 되는데 간단하게 차려지며, 막걸리 한잔은 아픈 허리를 낫게 하는 묘약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모내기는 줄모를 말한다. 장줄이라 하여 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꽃눈을 달아 표시한 줄이다. 논의 형태에 따라 줄의 길이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조절하여, 논의 양쪽에 박아놓고, 기준이 되는 줄 꽃눈 간격으로 줄을 옮겨가며 모를 심었다. 여러 사람이 일정한 규격에 따라 같은 속도로 심어야 능률을 올릴 수 있는데, 이는 줄잡이의 능력이다.

모내기에는 많은 일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품앗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웃 간에 각종 파종 때부터 품앗이하여 서로 도와가며 일의 효율성을 높였다.

나는 중, 고등학생 시절 모내기 철 일요일이면 바로 위 누나와 함께 품앗이하여 어머니를 도와주었다. 어렸지만 다부지게 일하여 어른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모내기는 고된 일이다. 이 힘듦을 잊기 위해서 모심기 소리를 불렀다. 노랫가락은 흥이 났으며 막걸리 한잔과 함께 부르는 노랫소리는 피로를 풀어주었고, 듣는 사람들은 절로 힘이 솟았다. 줄잡이의 목이 쉬어 소리가 잦아들 때면 어김없이 노랫가락이 들린다.

어야디야 저야 디야 상사디야, 이 농사 어서 지어, 우리 아들 장가보내고

어야디야 저야 디야 상사디야, 이 논배미 저 논배미 다 심었구나.”

어야디야 저야 디야 상사디야, 어서어서 장구 배미로 넘어가세.”

어야디야 저야 디야 상사디야,” 노랫가락이 끝나면 이어서 줄잡이 목소리도 힘이 나서 더 커진다.

~, 줄이야, ! 줄 넘어간다. ~

~, 줄이야, ! 줄 넘어간다. ~

줄잡이의 소리와 모심기 소리는 얼큰하게 오른 농주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기나긴 하루해가 저물어 간다.

모내기는 망종(芒種) 이전 대부분 마치게 되며, 모심기와 모든 파종이 끝나면 동네에서는 써레 시침이라는 행사가 있으며, 일정한 날을 잡아 동네잔치를 벌였다. 전래의 농경사회에서 행해지는 미풍양속(美風良俗)의 하나로 의미 있는 행사다. 파종 때 도와준 사람의 노고에 감사하고, 서로 위로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한해의 풍년을 기원했다.

 

모심기는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일해야 하기에 일꾼에게는 힘이 부친다. 먹는 것부터 잘 먹어야 하며 아침 새참, 점심, 오후 새참이 나온다. 이 시간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 된다. 새참은 간단하게 제공되지만, 점심인 못 밥은 다르다. 그 집안의 인심의 잣대가 된다. 못 밥이 잘못 제공되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품앗이나 다음 해의 농사에 애를 먹게 된다. 품앗이 집 선택하는 것도 못 밥에서 좌우된다. 따라서 못 밥은 논 주인의 정성이 들어간 차림이 된다. 논 주인은 그 집안만이 가지는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며, 마을 사람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나그네까지 불러서 나눠 먹었다. 잔칫집이나 다름없었다. 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보릿고개를 겪고 있을 때 흰쌀밥을 먹을 수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누나와 함께 하는 품앗이는 못 밥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머니의 못밥은 하지 감자에 갈치를 넣어 조린 갈치조림을 잘 만드셨다. 논은 이모작을 했는데 우리 집은 주로 보리와 마늘, 감자를 수확한 후 모를 심었다. 논에서 수확한 감자는 수분이 많아 맛이 부드러워 조림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요즈음 갈치조림이 맛있다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어 보지만 어머니 맛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추억 속의 맛이 되었다.

 

현재, 기계화된 영농에서 모내기의 정겨운 모습들은 볼 수가 없다. 모내기는 농촌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세시 풍속이었으며, 이웃 간의 정 나눔이라 할 수 있다. 6 ~ 80년대 힘들고 고된 모내기를 하면서 느낀 나의 감정은 진한 추억으로 남아 있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한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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