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바보(최광식) 수필집

어머니와 소금

멋쟁이 바보, 최광식 2024. 4. 9. 10:14
728x90
반응형

<예순, 내 인생 나도 잘 몰라> 아홉 번째 이야기

어머니와 소금

영원한 마음의 고향, 어머니란 그 한마디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늘 함께한다. 어머니는 백수(白壽)는 아니지만, 천수(天壽)를 다하셨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서 구순(九旬)까지 손수 끼니를 해결하신 분이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영원한 나의 안식처다.

 

셋째야, 뭐 하냐?, 앞장서라

어디 가시게요?”

장에 가서 소금 받아오자

어머니는 쉬고 있는 나에게 시장가기를 재촉한다. 어머니의 속마음을 알고 있어, 두말하지 않고 채비하여 전통시장으로 모시고 간다.

어머니를 뵈려 집에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막내아들인 나를 앞장 세워 시장 나들이를 하곤 했다. 하루 일정은 거의 정해져 있다.

시장에 들러 단골 가게를 찾아 안부를 묻고, 사야 할 물건을 확인하고, 흥정하면서 시작된다. 두 시간 정도 장보기가 끝나면 시장 국밥집으로 간다.

순대국밥을 좋아하신 어머니, 단골집이 아닌 다른 집에 간 기억이 없다. “내 셋째여, 야 그릇에는 고기 많이 넣어주고, 국밥 두 개와 막걸리 한 병 줘주문 끝이다. 물어보지 않은데도 자랑스럽게 셋째 아들이여!”라 소개하신다. 오십이 넘은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한결같았다. 나 역시 이런 어머니를 불편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두 시간여 동안 흡족한 식사가 끝나면 약국으로 가서 당신에게 필요한 약을 샀다.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소금가게다. 평생을 한 소금가게만 다니신 분이다. 사장님도 어머니를 잘 알고 계시기에 무슨 소금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간단한 흥정과 안부를 주고받은 다음, 소금을 받아서 나오면 나와 함께 한 하루의 장보기가 끝이 나고, 석양에 붉은 노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때론 아내가 같이 가기도 했다. 아들과 막걸리 한잔하고 싶고, 며느리 생각해서 맛있는 음식을 사 줄 요량이었다. 며느리들에게 멋쟁이 시어머니이기도 했다. 아내와 같이 갈 때면 어머니와 술 한잔할 수가 있었다. 돌아가시기 일 년 전까지 약주를 즐기셨다.

 

장독대에는 어머니의 보물창고가 있었다. 소금이 가득 담긴 큼지막한 옹기들이다. 삼 년간 한데서 소금에 들어 있는 간수를 빼내고 옹기에 담아 두었다. 간수가 빠진 소금은 씁쓸한 맛이 없어지고, 짠맛보다는 단맛이 날 정도로 좋은 소금이 된다.

어머니는 젊어서 농사를 지으며 고된 일을 많이 하셨다.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소금에 있었다. 장을 담그거나 김장, 모든 음식에는 간수가 완전히 빠진 소금을 사용했다. 어머니의 음식은 약간 짠 느낌이 들 정도다. 의사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지만, 형제자매 중에 성인병으로 고생한 사람은 없다.

뜨거운 뙤약볕에 일하면서 탈수를 방지하기 위해 물 한 바가지에 된장이나 간장을 짭짤하게 풀어 마시면서 수분보충과 갈증을 해소했다. 소금을 많이 드신 어머니는 고혈압, 당뇨와 같은 성인병 없이 구순을 넘게 사셨다. 간수를 뺀 소금 덕분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소금에 애착이 많은 분이었다. 요리에 소금을 구워 쓰시기도 했으며, 구운 소금에 참기름을 넣어서 반찬으로 내놓기도 하셨다. 장독대에 소금이 떨어질 무렵이면 나에게 다녀가라는 연락이 온다.

 

소금은 인류가 이용해 온 조미료 중 가장 오래되었다. 동식물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무기질이다. 음식 맛을 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되며 오랫동안 이용됐고, 맛을 내는데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위액을 조절하고 신경작용과 신체조직의 유지, 조절하는 생리적인 작용을 한다.

인간의 생명근원은 소금물이고, 여기서 자라고 태어났다. 소금이 없다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어머니의 양수, 혈액과 세포는 0.9% 식염수를 포함하고 있다. 탈수와 응급 시 가장 먼저 주사하는 것도 0.9% 생리 식염수다. 혈액이 썩어가는 패혈증도 염기가 부족해서 발생한다.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있지만, 몸에 염기가 부족하지 않도록 적절한 섭취가 필요하다.

어머니는 글을 읽거나 쓰지도 못하시지만, 소금에 대한 해로움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없애기 위해 간수를 빼내 식생활에 이용했고, 구운 소금으로 만들어 사용할 만큼 지혜가 뛰어나신 분이다.

 

어느 날 어머니께 “큰아들과 둘째 아들하고는 왜 안 다녀?”라고 물었다.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부담스럽고 같이 다니는 것이 불편하단다. 나는 어머니께서 살아 계신 동안 불편하지 않도록 해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명절이 되면 문밖에는, 혹시 올지도 모를 자식이 집에 들어오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불을 훤하게 켜 놓았다. 오랜 군 생활을 하면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소금을 끄집어내 어머니를 그려본다. 코로나 대 유행으로 올해도 고향을 찾지 못했다.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항시 그리운 게 고향이고 어머니다.

이제 내가 자식을 기다린다. 아들 부부가 다녀간다고 하니까, 아내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728x90
반응형

'멋쟁이 바보(최광식) 수필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릿고개  (0) 2024.04.22
모 내 기  (2) 2024.04.15
아부지와 아들, 아들과 아빠  (0) 2024.04.05
장모님의 가묘(假墓)  (2) 2024.04.02
막내의 용서  (0)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