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바보(최광식) 수필집

막내의 용서

멋쟁이 바보, 최광식 2024. 4. 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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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내 인생 나도 잘 몰라> 여섯번째 이야기

막내의 용서

 

 

얼마 전, 저녁 99시쯤 서울에 있는  막내가 도와 달라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급한 마음에 대충 준비하고 막내에게로 갔다. 방안에는 맥주 캔과 소주병이 나뒹굴고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인사불성이 되어 자고 있었다. 김포에서 사는 큰아들에게 먼저 가보라고 부탁했더니 먼저 와 있었다. 방안을 치우고 있자니 아이가 잠꼬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흘려보냈는데, 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의 잠꼬대를 하는 것이었다.

엄마, 살려 줘! 다시는 안 그럴게!”

엄마, 제발 살려 줘! 앞으로는 말 잘 들을 테니 그만 때려

잠을 자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얼마 지나서 세 번인가를 더 잠꼬대하더니 곤하게 잠을 자기 시작했다.

막내는 술을 거의 마시질 않은 애였다. 얼마나 괴로운 일이 있어서 술을 마셨을까?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다. 새벽 4시쯤 술이 깨는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냉수를 한잔 들이켜더니

아빠, 언제 왔어?”

, 11시쯤에,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을 그리 많이 마셨는데,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별일 아니야, 그냥 술이 먹고 싶어서

이놈아,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데, 웬 술을 그리도 많이 마신 거야?” 다그쳤더니

그냥, 답답하고 우울해서, 그리고 어릴 적 생각도 났고라고 말한다.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일들이 생각나 그를 괴롭힌 것이다. 막내를 품에 안은 것은 친부모의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15년이 지난 지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꿈속에서까지 나타났을까?

한 아이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당사자들은 편하게 살고 있을까? 생각하니, 그들이 원망스럽고 마음이 아프다.

아이는 치유가 힘들 만큼 친부모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 하루는 친엄마를 욕하며, 고소라도 해서 내가 받은 고통을 갚아 줄 거야!”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성년이 되어서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친부모의 학대였다. 그 응어리는 분노가 되었고, 우울증까지 생겼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평생을 마음속에 담아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막내는 정이 깊은 아이다. 인내심도 좋아 어지간한 일에는 화내지 않는다. 유머도 있고 웃음을 줄 줄도 안다. 가끔 힘들어하는 이모 엄마에게도 위로 말을 할 줄 아는 아들이다. 나에게도 살갑게 하면서 닮아 가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처한 사실을 인정하고 치유하려 발버둥 치는 모습에서 애련함을 느낀다. 사랑이 그립고 사랑받고 싶은 아이다. 가끔 친엄마를 용서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 생각이 떠오르면, 분노를 느끼고, 분노가 우울증으로 이어져 괴롭히고 있다.”라고 한다. 그 분노를 용서해야 하는데 막내에겐 아직 그 힘이 부족한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모자지간에 용서하고 화해할 기회가 있었다. 친엄마가 분당 서울대학 병원에 2주간 입원한 적이 있었다. 막내를 설득해서 병문안을 갔다 오라고 했으나,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꿔 갔다 온 모양이었다. 후일담이지만 혼자 사는 엄마가 안쓰러워 용서하고 싶어서 찾았으나, 아들이 내민 손을 엄마가 잡아 주질 않았다라고. 자신은 잘못이 없으니 용서하고 말 것도 없다는 게 친엄마의 생각이다. 자식에겐 잊지 못할 상처가 있는데, 엄마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 치유가 필요한 것은 엄마인데 어려운 숙제다. 안타까운 일이다.

막내에게 부탁했다. “고소하기 위해서는 학대받은 내용의 장소와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가능할지 모르는 일이다. 네가 필요하다면 아빠는 끝까지 도와줄 것이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모든 것을 적어봐라.” 분노를 치유하는 한 과정으로, 내면에 쌓여있는 응어리를 끄집어내 종이에 적게 하고, 그것을 태움으로써 내면의 응어리를 하나하나 버리며 치유하는 방법이다. 용서는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만의 일방적인 용서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둘이 만나서 부둥켜안고서 실컷 울고 난 후, 서로를 용서하면 해결되는데 그것을 못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행복을 최대의 목표로 하며, 행복에 이르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삶을 살면서 상처와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또 다른 생의 비극을 가져오는 인과 관계로 이어지게 된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질투, 원한의 감정이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은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 걸림돌을 뛰어넘는 유일한 것이 용서라 말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상처받은 감정은 깊고 오래간다. 상처를 안겨준 이들에 대한 감정의 골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강론에서 용서는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며, 한 사람의 삶을 바꿔 긍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용서는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지만, 복수는 삶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불행을 낳습니다. 복수 대신 용서를 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한다.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자신을 놓아주는 일이며,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용서와 화해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며, 지난 일에 마음의 빗장을 걸고 있던 상대에게 문을 여는 데 필요하다. 용서란 힘든 과정이지만 여러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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