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바보(최광식) 수필집

왜, 마누라 말은 죽어도 안 듣는지 몰라?

멋쟁이 바보, 최광식 2024. 3. 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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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수필, 네 번째 이야기>

, 마누라 말은 죽어도 안 듣는지 몰라?

 

 

결혼해서 아내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한 일이 많았다. 결과가 좋았을 때 보다는 좋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다.

나는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성향은 미리 일을 정해 놓고 통보하는 식의 일 처리를 많이 했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이기적인 모습은 아내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지금이야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한 창 왕성하게 일을 해야 할 시기인 사십 대 후반에 공직에서 퇴직해야만 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젊은 나이에 퇴직하다 보니 조급증에 시달렸다. 큰아이가 대학 일학년, 둘째 아이가 고 3학년이었다.. 무엇인가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급증은 앞뒤 분간할 여유가 없었다. 이 시점에 지인으로부터 식당을 제안받았고, 아내와 협의 없이 결정해 버렸다. 반드시 성공하여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자기 최면을 걸어 버린 것이다.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선배로부터 괜찮은 직장을 소개를 받았으나 이마저 거절했다. 친구들은 식당을 시작한 10명 중 8, 9명은 망한다.”라는 말로 만류했다. 아내의 반대는 더욱더 강했다. 역시 콩깍지가 끼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볼 수가 없었다. 어떤 만류의 말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퇴직은 3년 전 예고되어 있었다. 퇴직 후 대비하기 위해서 자동차 검사 기사, 지게차 운전, 위험물 취급 기능사,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놓았다.

잘못된 인연과 결정으로 퇴직 후에 모든 삶은 엉망진창,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아내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의견과 충고를 무시하고 준비되지 않은 식당을 무리하게 시작했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하니 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았고, 조급증과 욕심으로 인하여 적지 않은 부채를 떠안고 10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돈만 잃은 것이 아니라 건강과 은행 신용까지 잃게 되었다.

 

지긋지긋한 악연의 시작은 퇴직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사람은 고향이 같았으며 2살이 많았다. 어떻게 만났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으나, 같은 고향이라 자연스럽게 가까이 지낸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는 근무지 근처에서 보신탕집을 하고 있었다. 장사가 잘되는 식당으로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었다. 보신탕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직원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된다. 고향이 같아서인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만날 때마다 비굴할 정도로 읍소하며 90도 가까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곤 했다. 솔직히 그런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아내가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막대한 수술비 마련을 해야 해서 식당을 할 수 없다라는 취지로 고충을 얘기했다. 세상 물정에 밝지 못한 나는 순진한 마음으로 그 사람 말에 동정하며 그대로 믿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수술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도움 줄 방법을 물었더니, ‘식당을 넘기려고 하는데, 대신 맡아서 식당을 해보지 않겠냐?’라고 제안을 해 왔다. 식당을 인수하라는 말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은 시작되었다. 얼마나 급했으면 잘되는 식당을 넘기겠다고 하는 걸까?

3개월 가까이 운영실태를 확인해 보았다. 당시 보신탕은 일반화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았던 음식으로 장사는 잘되고 있었다. 어차피 전역 후 월급 생활은 하고 싶지는 않았고, 개인 사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왔다. 기울기 시작한 마음이 식당을 해야겠다는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혼자서 일을 결정하고 약속해 버렸다.

오지랖이 넓은 나는,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을 동정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주려는 습성이 있었다. 이러한 나의 성격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식당은 실패했고, 삶은 피폐해질 정도로 변하였고, 가정의 행복까지도 위협을 받았다. 결정이 성급했고 잘못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사람과는 잘못된 만남이었고 악연이었다. 비굴할 정도로 굽실대던 그는 목적을 이룬 후 태도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자기보다 힘 있고 이용할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굽실거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뤘다. 그러나 자기보다 못하다고 판단되면 피도 눈물도 없었다.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업 방해가 시작되었으며 집요했다. 임대계약이 삼 년인데 일 년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빠져나와야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사람이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임차인은 안중에도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 일 말고도 부하직원에게 은행 대출 보증을 아내 몰래 서 주었는데, 보험업을 하던 그 직원의 아내가 부도를 맞으면서 잠적하는 바람에 고스란히 빚을 떠안게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지방의 30평 아파트 한 채의 가격이다. 10년간 모아둔 종잣돈까지 날렸는데도 꿈쩍하지 않았던 아내는, 나로 인하여 여러모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혼자서 결정한 일이 결과가 좋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큰일을 하면서 아내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처신한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마누라 말은 죽어도 안 들어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나도 잘살아 보려고 했던 건데, 너무 심하게 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 아내도 지지 않고 화를 낸다.

그때 내 말만 들었어도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잖아!”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어 가장 아픈 부위를 건드려 속을 뒤집어 놓는다.

나도 최선을 다했어. 처자식 굶기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이제 그만해, 실수할 수도 있어, 생각하면 할수록 나도 괴로워, 언제까지 과거에 연연해서 살 거냐고?”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고 있다.

잘못된 결정과 실수를 인정한다.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하여 아내의 의견을 듣고 결정했다면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아내는 내 곁을 지켜 주면서 묵묵하게 격려와 지지를 해 주고 있다.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와주는 아내가 있어 고마울 뿐이다. 지금은 아내의 말에 신뢰하고 어떠한 의견도 존중하고 있다.

, 마누라 말은 죽어도 안 듣는지 몰라?”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웃으면서

~~, 잘 못 했습니다. 앞으로 마누라 말 잘 듣겠습니다.” 지은 죄가 있어 살며시 꼬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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