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바보(최광식) 수필집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며

멋쟁이 바보, 최광식 2024. 3. 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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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을 극복하며

급성 심부전증, 확장성 심근병증, 부정맥으로 쓰러진 해가 20123월로 9년이 지났다.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죽음을 생각하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 아내의 글썽이는 눈물을 보았고, 잘못 살아온 지난 삶에 회한이 몰려왔다. 병의 원인은 알코올 중독, 심각한 스트레스, 바이러스 감염과 약물 중독이었다.

25년 군 생활을 하고, 47세에 전역을 했다. 대학에 다니는 두 자녀의 학비와 생활비 걱정으로 조급증에 빠져들었다.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고, 당장 돈이 필요하여 재취업을 할까 하다, 한 지인으로부터 식당업을 권유받고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막연한 생각에, 준비되지 않은 식당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게 잘못이었다.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착시 현상을 겪으며 8년을 지속했다. 사업이 잘 될 때도, 잘 안 될 때도 조급증에 빠져 있었다. 조급하게 하는 일은 무리하게 진행되었고 심신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업은 99%가 망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식당을 시작할 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잘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준비 없이 시작했다, 열과 성의를 다하여 부족한 준비와 경험을 메우고 있었으나 역시 한계가 있었다.

임대인과 잦은 갈등은 소송으로 진행이 되었다.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투자했던 비용을 고스란히 날렸으며, 손실을 떠안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식당을 계속했다. 여기서도 4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이어서 했던 사업이 꽤 규모가 큰 생맥줏집이었다. 모아 놓았던 돈은 거의 다 소진되었고 손실을 만회하려 무리한 투자를 했다. 투자금은 고리(高利) 사채를 썼는데 이게 화근이 되었다.

장사는 잘되고 있었으나 운용자금에 많은 압박을 받았다. 사채를 갚는 데 쓰다 보니 여유자금이 부족했다. 어려운 현실을 잊으려고 술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침 6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저녁 12시 영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소주 2병 이상과 생맥주 3,000cc 이상을 매일 마셨고, 알코올 의존을 넘어 알코올 중독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맥줏집은 공공시설을 임차하여 2년마다 입찰해서 재계약을 해야만 했다. 갈수록 입찰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입찰 단가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10년 이상은 운영해야 투자 대비 손익 계산서가 나오는데, 5년째 되는 해에 재계약이 무산되었다, 그 과정에서 큰 금액의 시설투자 비용이 손실을 보며 4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투자금의 회수는 거의 하지 못했고 결정적인 금전적 타격을 받았다.

전역 당시 준비했던 아파트를 처분하여 빚을 청산하였으나 여전히 빚은 남아 있었다. 2012년 초에는 거의 무일푼 상태가 되었다. 당시의 감정은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고, 죄책감은 술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내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와 은행 이자를 충당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술 속에서 방황했다. 그러다 결국 급성 심부전으로 쓰러졌고,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돈과 명예, 건강을 잃어버리고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이는 모습을 봤다. 보는 순간 이게 아니다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용서하며 새 삶을 살고 싶었다. 이러한 결심은 늦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급성 심부전증을 치료하면서 술을 끊게 되었다. 금단현상, 주위의 유혹, 친구와의 교류 단절, 주위의 비아냥거림은 나를 힘들게 하였고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2013, 지인의 도움으로 강원 화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자취했다. 술을 끊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으며 아내가 가장 좋아했다. 지금 몸 상태는 정상이나 다름없다. 인고의 절제된 생활을 한 결과다. 알코올 중독성 술까지 끊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의 불행은 없으며, 아픔과 알코올 중독도 극복했다.

 

군 생활 최종 근무지가 원주여서 2004년 전역을 하면서 원주에 정착했다. 원주에서 20년을 넘게 살면서 사귄 대부분 친구는 운동과 술로 맺어졌다. 지금 남아 있는 술친구와 교류는 거의 없다. 대신에 다른 사회적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당시에 술이 없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다. 술이 없으니 더 건전하고 풍요로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이후의 삶은 덤으로 살고 있다. 덤으로 사는 생을 더욱 멋있고, 매사에 감사하며 생활하니 더없는 행복이 찾아왔다. 후반기 인생은 더 좋은 일을 하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여생을 아름답고, 즐겁게 살려고 다짐을 한다.

내가 만약 누군가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이 아니다. 한 생명의 고통을 걸어주고 기진맥진하여 떨어지는 한 마리 새를 다시 둥지 위에 올려줄 수만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다.”라는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말처럼, 후반기 인생은 가치 있고 즐거운 삶이 될 것이다.

나는 매주 어르신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말동무를 하면서 고민도 들어주고, 외로움을 함께 하며, 때론 광대가 되어 즐거움을 드린다. 어르신들의 큰 아픔 중 하나는 외로움으로 주위에서 얘기하고 싶어도 들어주며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아픔은 일을 하고 싶어도 적절한 일거리가 부족하고 건강도 문제가 된다. 앞으로도 이러한 어르신들의 아픔을 함께하며 보듬어 주는 일은 계속할 것이다. 또한, 지역 보건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알코올 중독 예방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알코올 중독자 치료 프로그램에 동참하여 도움을 주고 싶다. 주위에 사회적 관계망 내에서 소외되고 도움을 받지 못한 분들이 의외로 많으며, 커뮤니티 케어에 관심이 있다. 저출산과 어르신 문제 등을 개선하고, 연구하고 싶어 통신대학교에서 가정복지학을 전공했다.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분을 돕기 위하여 전문적인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머니께서는 평생을 이웃과 더불어 생활하셨고 바른길을 가고자 했다. 사랑하고 나누어 주시는 것을 미덕이라 말씀하시며 실천하신 분이다. 어머니의 삶은 나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어머니의 뜻을 기려 실천하는 것이다. 나의 여생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와 나눔 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내가 필요한 곳에 머물며 어려운 이웃과 함께 가고자 한다. 이 길이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이며, 모든 불행을 극복하고 희망을 안고 가려 한다.

삶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은 인생의 의미이며 즐거운 삶의 원천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은혜에 대한 표현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고단함도 달콤해지며, 행복해진다. 매사에 감사할 줄 알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매 순간 행복하고 활기가 넘치는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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