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행복

올해 104세,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멋쟁이 바보, 최광식 2024. 9. 1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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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단상

 

올해 104,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 1920년생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2024년 새해 소망은 시인이 되는 것이다.>

강연을 마치고 승강기를 기다리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서는

선생님, 정말 100세 넘으셨습니까?” 물었다. 할 말이 없어서

어머니께서 알려준 나이니까 맞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그 노인은

저는 92세인데요라면서 떠나갔다. 자기 나이와 비교해 내 모습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떤 때는 나 자신에게 중얼거린다.

90을 넘긴 건 확실하다. 80대에 아내를 보내곤 집이 비어 있는 것 같더니,

90에 안병욱, 김태길 교수와 작별한 후에는 세상이 빈 것처럼 허전했다.

그런데 어느새 100세를 넘겼다는 사실엔 나조차 공감하기 쉽지 않다.

 

100세가 넘어 제주나 부산으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난처한 일을 겪었다.

내 주민증으로 예약한 탑승권은 기계가 인식하지 못한다.

02세가 되기도 하고 탑승권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한참 조사해 본 직원은

세 자리 숫자는 컴퓨터에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몇 년 더 지나면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요사이는 주변에서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내가 넘어지거나 길을 잃을까 봐서 걱정이란다.

연세대 제자들과 모임을 하고 혼자 떠나는데, 제자가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오면서 나를 살펴주었다. 자기 부친은 길을 못 찾아 파출소까지 가곤 한다고 했다.

 

좋은 점도 있다. 약간 알려진 식당에 가면, 나도 모르는 제자들이나 손님이 식대를 대신 내주기도 한다. 처음 만난 분이 애독자라며 또는 저희를 위해 수고하셨다며 점심값을 내준다.

집 가까이에 있는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는 오래전부터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 그러니까 오히려 조심스럽고, 비싼 식사는 사양하게 된다.

 

몇 년 전 KBS에 출연하였는데 대담자가

혼자 오래 사셨는데 여자 친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색해서

생각은 간절하지만 요사이는 너무 바빠서 안 될 것 같다. 2년쯤 후에는 신문에 여자 친구를 기다린다라는 광고를 낼 작정이라고 했다. 모두 웃었다.

100세 전까지는 누군지 모르는 할머니들이 정말

그 신문 광고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다. 그런데 100세가 한계선이었다.

모든 할머니가 다 떠나 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지난 연말이었다. 문학인들이 모이는 남산 문학의 집, 서울행사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를 낭송했다.

윤동주는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에서 공부한 내 인생의 첫 시인이다.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난 후에 구상 시인이 마지막 시인이 되었다.

죽음을 예견하는 병중에 있을 때 나에게 윤동주가 보낸 시가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시작했는데

죽음의 문 앞에 서니까 내가 그렇게 부끄러운 죄인이었다라는 시였다.

동주는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길을 걷지도 못하고 목숨을 빼앗겼다. ‘그리고’  대신에 그래도라고 했더라면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나도 머지않아 삶을 마감하는 문을 열어야 한다. “여러분과 함께 있어 행복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남기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할 것 같다.

그날 낭송회에서 나도 모르게 새해 소망을 말했다.

앞으로 5년의 삶이 더 주어진다면 나도 여러분과 같이 시를 쓰다가 가고 싶다라고 했다. 오랫동안 나는 사회 속에서 선()의 가치를 추구해 왔다. 100세를 넘기면서 나 자신을 위해 아름다움을 찾아 예술을 남기는 여생을 갖고 싶었다. 아름다움과 사랑이 있는 인생이 더 소중함을 그제야 알았다.

내 새해 소망은 시인이다. 시다운 시를 쓰지 못하면 산문이라도 남기고 싶다. 100세가 넘으면 1년이 과거의 10년만큼 소중해진다. ( 김형석 교수의 말을  옮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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